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량 해전 (문단 편집) === 엄정한 군율과 신뢰, 지휘력 === 명량 해전 이전 조정에서는 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합류시키자는 논의가 오가고 있었고, 이순신이 가장 신뢰하는 용감한 장수들도 [[칠천량 해전]]의 패전 직후 전투를 거부할 정도로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불가능할 것 같은 전투에 참전하고 공포심에 물러났다가도 공포를 이기고 돌격명령에 다시 응한 데는 이순신의 지휘력과 리더십에 대한 굳건한 신뢰와 평소의 군율이 바탕에 있다. 이순신의 리더십은 엄정하게 군율을 세우면서도 휘하 군인들과 놀이를 즐기거나 술자리를 가지고 사이사이 의견교환을 나누는 긴밀한 소통 관계로 이루어져 있었고, 무패의 경력을 자랑하는 이순신의 절대적인 지휘력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육전과 달리 도주할 곳도 없는 해전에서, 그것도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도주 일보직전의 군인들이 돌진을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또한 이순신의 수군은 평소의 숙련도가 매우 높았고 지휘관인 이순신이 개별 함선들을 매우 정확하게 지휘했기 때문에 명량 해협의 맹렬한 물길에서도 조종, 사격 등 함선의 운용을 비교적 능란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같은 압도적 스펙의 함대를 가지고도 정보수집도 않고 무리하게 항행을 강행한 끝에 흐지부지 괴멸당한 원균과 비교하면 지휘관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조선 수군이 사용하는 대형 총통들의 운용 기록을 보면 [[이순신#s-7.2|지상보다 사거리가 매우 짧은 편]]이었다. 더군다나 울돌목의 해류는 앞서 언급했듯 동아시아 최고로 점쳐질 만큼 빠른 곳이었고, 이런 곳에서 혁혁한 전과를 낸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